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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을 가진 현대인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1. 자기만의 미션을 직업을 통해 수행할 수 있는 사람

2. 직업이 직접적으로 미션 수행과 직결되어 있지는 않지만, 자기만의 미션을 수행하는데에 직업을 유용한 도구로 건강하게 활용하는 사람

3. 자기만의 미션이 무엇인지도 모른채로,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로 그저 먹고 살기 위해 시간에 쫓기며 돈을 버는 사람 



1번 케이스는 운이 좋은 케이스이다. 그들은 그 상황에 매우 감사해야 할 사람들이다. 비율적으로 매우 소수라고 확신한다. 직업을 통해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발전과 니체가 말하는 초인을 향한 향상심을 느끼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야만 하는 현대인의 특성을 고려해보았을 때, 이들의 삶의 만족도와 행복감은 감히 극상위권에 집중 분포하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2번 케이스 또한 나름 운이 좋은 케이스이다. 직업은 미션을 위한 좋은 도구라는 사실을 직업을 가지기 전에 알았든, 직업을 가지고 나서 3번 케이스와 같은 삶을 살다가 무언가를 깨닫고 2번 케이스로 노선을 변경했든, 현대인으로서 꽤 높은 삶의 만족도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다. 다만 3번 케이스에서 2번 케이스로 변경한 경우, 이 노선 변경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이 노선 변경은 그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변곡점이다.
2번 케이스의 경우, 지속적으로 미션을 의식해야만 3번 케이스로 변질되지 않을 수 있다. 수많은 3번 케이스의 사람들에 노출되며 2번 케이스의 마인드를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배울 것이 있다면 배우되, 거리를 둬야한다. 절대 물들지 않아야 한다. 항상 경계하고 의식해야 한다.

3번 케이스는, 현대인 중 굉장히 많은 비율의 사람들이 이에 속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반드시 벗어나야 하는 상태이다. 하지만, 누구나 노력한다면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케이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은 그리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가슴뛰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지 않을 것이다. 니체가 말한 초인을 향한 향상심이라는 것은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그렇기에, 그들의 삶은 텅 비어있다. 그 텅빈 마음을 무언가로 급하게 채우기 위한 단기적인 조치를 간헐적으로 취할뿐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게임을 한다거나, 술을 마신다거나, 그저 시간을 죽이는 식으로 말이다.  이러한 방법들은 지속이 불가능하며, 자생적이지 않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러한 몸부림 후에는 매우 큰 공허를 느낀다. 평소에 그들의 의식은 죽어있고, 눈은 썩은 동태눈을 하고있다. 움직이는 좀비와 같다. 살아있으면서 살아있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 부정적인 에너지가 체취에 묻어 풍겨나온다. 그 악취에는 오직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텅 빈 마음과 허무한 상태가 극에 달하면 이들은 스스로를 되돌아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이유를 아예 찾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혹 이유를 찾았다 하더라도, 몇 년 혹은 몇 십년 간의 타성에 젖어 결국 향상심을 찾지 못하거나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3번으로 이미 접어든 사람 중 극히 일부만이 2번 혹은 1번으로 노선을 변경할 수 있다.


자기자신을 천천히 되돌아보고, 내 마음속의 매우 작은 결핍의 불씨를 찾아내는 과정은 고통스럽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다. 답답하고 미칠 것 같다. 과연 그 불씨가 있는지 자체도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그것을 찾는 과정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워서 차라리 없다고 믿어버리고 싶다. 실제로 어떤 이들은 분명히 무언가 잘못됐음을 알지만, 찾아보려는 노력도 했지만 끝내 현실을 부정하고, 그런 것 따윈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포기해버린다.

그 불씨는 절대 쉽게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3번 케이스로 살아온 삶이 길수록 그것을 찾는데 걸리는 시간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어느 시점 이상이 된 순간은 아마 평생동안 찾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3번 케이스에서 2번 케이스로 노선을 변경하는 시점은 최대한 빨라야만 한다. 가능한 그 깨달음의 시점을 앞당겨야만 한다. 죽기살기로, 필사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나는 그들의 삶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다.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그 느낌을 잘 알고있다.

 

미션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그 어떠한 욕구보다도 강렬하다.
밥이나 물을 먹지 않으면 인간은 죽는다.
잠을 자지 못하면 인간은 죽는다.
섹스를 하지 못하면 인간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섹스의 경우 정확히는 인간 개개인의 개체가 아닌,

인간이라는 종의 죽음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욕구들을 뛰어 넘는 욕구는 오로지 미션뿐이다.

 미션은 비유적이고 주관적인 표현이다. 이것을 다른 단어로 표현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표현이 다를 뿐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본질은 동일하다. 모든 인류의 지향점이자, 가장 강한 욕구이기 때문이다. 이 지향점은 국가와 시대와 성별을 막론한 인류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우리의 유전자 속에 깊이 새겨져있는 것이다.

미션이 없다면 인간은 죽는다. 그것은 죽음 그 자체이다. 어떤 사람이 살아 숨쉰다고 해서 그 사람이 죽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3번 케이스의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심한 회의감에 빠진다. 이들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이것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면서도 정작 미션을 찾으려는 깊은 노력은 하지 못한다. 미션때문이라는 것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자신만의 미션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도 없다는 생각때문이다. 두려워한다.

아직 자신만의 미션을 찾지도 못했는데, 퇴사를 하고 새로운 미션을 찾는 노력을 그제서야 하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크다. 두려울만 하다. 그럴 때는, 퇴근 후에 진정으로 자신의 삶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매일 매일 고통스러워하며, 답답해하는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한다. 몇 주가, 몇 달이 걸릴 수도 있다.

한편, 사실 이 세 가지 분류에 대해서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꼭 이 미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만이 정답은 아닐 수 있다. 이러한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어도, 무언가에 이끌려 본능적으로 그렇게 미션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어찌보면 초월의 경지에 다다른 사람들이 아닐까. 말로 설명할 수는 없어도, 그렇게 미션을 가지고 살아가는 패턴 자체가 본인을 행복하게 하고 가슴뛰게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인지하고, 아무렇지 않게 실행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까지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다면 이 글을 보고, '아 나는 2번 케이스였구나' 정도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위의 설명이 충분했다면 말이다. 생각보다 미션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않고도 본인만의 미션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들은 많다. 각자의 해석대로 그것을 느끼고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다. 표현이 어떻게 되었든, 모두가 말하는 본질은 같을 것이다. 꼭 퇴사를 해야 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굳이 1번이 아닌 2번 케이스의 경우라도, 분명히 직업은 경제적 수단을 넘어서 그 자체로 미션으로서의 의미를 가질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가슴을 얼마나 뛰게 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만약 퇴근하고 나서의 미션이 직장에서보다 당신의 가슴을 훨씬 더 뛰게 한다면 직업은 수단으로서의 의미가 더 클 것이다. 물론 직장에서도 어느 정도의 성취감은 얻고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크게 직장에서도 가슴이 뛰지 않지만, 퇴근하고도 가슴뛰게 하는 무언가가 없어서 '직장이 곧 나의 미션'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당신은 아직 미션을 찾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경우, 결국 언젠가 무기력감과 회의감은 우리를 엄습할 것이다. 걱정할 것은 없다. 그 때만이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다. 그 기회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

 

반면, 퇴근 후의 미션은 딱히 없는 것 같지만 직장에서도 충분히 부족함 없이 가슴이 뛰고, 성취감에 취하고, 스스로를 발전시켜나가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면, 그 상황에 감사하면 된다. 그리고 그 직장 안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미션을 부여하면 된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경우는 대개 전문직이나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만약, 회사를 위해 일하는 일반 직장인이 직업을 통해 확고한 본인만의 미션을 수행하고 있다고 느끼면 그 사람은 둘 중 하나이다. 로또에 맞았거나, 스스로도 자기 자신이 당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즉, 진정으로 자신의 미션을 찾지 못했거나.

결국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며, 그것이 크든 작든 어제보다 더 나은 나를 위해, 나를 가슴뛰게 하는 무언가를 꾸준히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들은 미션을 가진 이들이다. 중요한 것은 그 미션은 언제나 한시적이다. 기간이 3일이 될 수도, 한 달이 될 수도, 몇 년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미션이 끝났을 때의 허무와 공허를 자연의 섭리로 인정해야 한다. 미리 대비해야 한다. 그것이 방황을 최소화하는 지름길이다.

한편, 우리의 미션은 특별히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미션을 간직하며 삶을 살아가는 것 자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 후에는, 당장 실현가능한 미션을 설정하고, 당장 수행해야 한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행동해야 한다. 그 미션의 경중에는 어떠한 의미를 두면 안된다. 그저 어제보다 나은 나, 초인을 향한 향상심을 가지는 것 자체가 중요하고 그것이 정답이다. 당장 시작해야 한다.


누군가의 미션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꽤나 거창한 일일 것이다. 새로운 기업이나 법인을 설립하는 것이나, 새로운 재단을  설립하는 것 처럼. 또 누군가의 미션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미약해보일지 모른다. 식물에 물주기가 될 수도, 팔굽혀펴기 100개를 하는 것일 수도. 심한 경우, 내일은 집 밖으로 나가기라도 해보는 것일 수도 있다.

미션의 경중에 어떠한 의미도 둬서는 안된다는 말은 여기에서 알 수 있다. 타인과 비교하면 어떤 이의 미션은 보잘 것 없이 느껴질 수 있지만, 이 세상의 모든 미션을 가진 사람들은 그 자체로 거룩하고 숭고하다. 그들은 그저 썩은 동태눈을 하고 현실에 안주하며 '그까짓게 무슨 미션이냐'라고 손가락질 하는 안타까운 사람들과는 다르다. 그들의 손가락질에 흔들려도 우리는 다시 일어나야 한다. 그들은 우리의 발전을 두려워한다.

그들은 무기력과 나태의 늪에 빠져서, 나올 생각은 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 늪에서 빠져나오려 할 때, 그들은 우리를 붙잡는다. 크게 달라질 것 없다며, 어차피 결국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올 것이라며 혀를 찬다. 그들은 우리가 떠나는게 두렵다. 그 축축하고 더럽고 어두운 늪에 혼자 남게 될까봐.

자기만의 미션을 가진 사람은 거룩하다.
자기만의 미션을 가진 사람은 여유롭다.
자기만의 미션을 가진 사람은 크게 화날 일이 없다.
자기만의 미션을 가진 사람은 아이처럼 웃는다.
자기만의 미션을 가진 사람은 환희에 젖어 춤춘다.
자기만의 미션을 가진 사람은 고통의 눈물을 흘리면서도 기쁨에 찬 미소를 머금는다.
그렇기에 자기만의 미션을 가진 사람은 매력적이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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