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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 읽음

 

"그들은 왜 섹스리스(Sexless)일까?"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벤이다. 그는 세상에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한 여인과 결혼했다. 그녀의 이름은 엘로이스이다. 벤은 엘로이스를 무척 사랑한다. 험난한 세상의 든든한 동반자이며, 소울메이트이다. 그녀 없이 살아가는 삶이란 그에게 상상할 수 없는 무언가이다.
 
하지만, 결혼한지 불과 몇 년만에 그들은 성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다. 이유를 묻는다면, 논리적으로 명쾌하게 설명은 잘 못한다. 다만 확실한 것은, 왠지 모르게 서로가 싫어서라기보다 너무 사랑해서 그런 것 같다. 미혼의 남녀가 이 말을 들으면 웃는다. 그게 말이 되냐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진심이다. 서로를 너무 사랑해서 그들은 섹스를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성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행위이다. 동물적이고 본능적이면서도, 그 어떠한 행위보다 깊은 철학적인 의미를 갖는다. 사랑하는 연인들은 서로의 온기를 느끼고, 들숨과 날숨을 공유하고, 타액을 섞고, 원초적인 상태로 돌아가 마치 원숭이처럼 온몸을 애무하다가 호르몬이 폭발하고 마침내 자신들의 태초가 되었던 공간을 공유한다. 음과 양의 조화, 혼돈과 질서의 통합 그 자체이다. 
 
이는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존재하는, 의식의 영역으로 통제할 수 없는 가장 연약한 속살을 모두 상대에게 드러내는 행위이다. 떼놓고 보면 괜스레 부끄럽고, 이성적이지 못하다. 현대화되었고, 스마트하고, 이성적인 우리 자신과는 안어울린다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우리의 유전자는 우리를 가만두지 않는다. 불순한 것만 같은 그 욕구를 결코 우리는 떨쳐낼 수 없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가 번식하는 것이며, 그들은 우리의 몸 속 세포 하나하나에 빽빽하게 포진되어있다.
 
단순히 외적인 이유로 서로에게 성적 끌림을 못느끼는 경우를 제외하면, 부부간에 관계를 맺어서는 안될 것만 같은 느낌은 특히 서로를 많이 사랑하고 존중할수록 강하게 든다. 왠지는 몰라도 서로가 해서는 안될 것만 같은 짓을 저지르고 있는 것 같다. 혹은 그게 아니더라도,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한 행위를 하기가 멋쩍다. 작가의 말마따나 '어쩌면 섹스는 잘 아는 사람과 하기엔 지나치게 사적인 행위일지도 모른다'. 결혼에 관한 수많은 농담 중 '가족끼리 왜 이래?'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사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비단 섹스까지 가지 않아도 이 느낌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생각들을 한다. 유치한 생각도 하고, 저급한 생각도 하고, 극단적인 생각도 하고, 가끔은 스스로가 싸이코패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그런 생각도 한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생각들조차 우리는 가까운 사람에게는 말하긴 조금 그래하면서도 익명의 누군가에게는 맘편히 말하곤 한다. 낯선 장소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에게 말이다.

 

낯선 여행지에서 싹튼 사랑이 강렬하면서도 일시적인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완전한 이방인이 되는 여행지에서 만난 이성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놀라울 정도로 서로에게 솔직하고,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이야기들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확실히 익명성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어떤 자물쇠를 거침없이 풀어주는 듯 하다. 그 경험은 신비롭고 짜릿하다. 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익숙한 동네에서 그 사람을 다시 만났을 때는 이상하게 부끄럽다. 서로가 너무 이른 시기에 자신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이야기한 것 같아 괜히 부끄럽고 어색한 기류가 흐르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섹스리스는 생각보다도 더 오묘하다. 사랑하기 때문에 (육체적인)사랑을 할 수 없다. 너무 가깝기 때문에 보여줄 수 없다. 이 얼마나 모순적인 말인가. 알랭드 보통은 '사랑의 기초 : 한 남자'라는 책에서, 우리가 이러한 감정들을 느끼는 메커니즘을 설명하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또한, 작가는 사랑하는 방법도 마치 우리가 요리나 언어를 체계적으로 배우는 것처럼 '교육'받아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우리는 자식들에게 언어를 교육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는다. 최대한 다양한 어휘를 구사하고, 발음을 교정해주고, 심지어 한 달에 몇 백만원 하는 영어 유치원을 보낸다. 하지만, '사랑'하는 감정은 타고나는 것이며, '배워야 할' 무언가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작가는 이는 지나친 오만이라고 말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매우 조심스레 다뤄야하는 것이며, 현명하게 다루기 위한 방법들이 어느 정도 정해져있다고 말한다.

 

그것도 맞는 말인 것 같다. 사랑을 현명하게 다루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 삶을 처참히 파괴할 정도로 강력하다. 사랑은 총, 칼보다 위험하다. 우리는 사랑을 현명하게 다루지 못한 비극적인 결과들을 수도없이 봐왔다. 폭력은 우습고, 살인까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폭력과 살인은 고사하고, 사랑은 한 나라를 뒤흔들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다. 따라서 그것을 체계적으로 '교육'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닌 것 같다.

 


 
 

# 사랑의 기초 : 한 남자, 알랭드 보통, 양장,2013.

 

 


 

기억나는 구절들


 

사랑이란 그에 응해줄 구체적인 실체, 어떤 확실한 존재가 없을 때 훨씬 경험하기 쉬운 어떤 감정인 듯 보였다.

 
 

먼저 샤워를 끝낸 엘로이즈는 하얀색 타월을 느슨히 감고 가슴을 드러낸 채 누워있었다. 연애할 때만 해도 벤은 이 젖가슴이 어떻게 생겼을까 상상하느라 아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처음으로 젖꽃판을 동그라니 어루만졌을 때는 완전히 이성을 잃고 흥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신체의 다른 부분, 가령 엄지손가락이나 정강이보다 더 눈여겨보거나 한마디 보태거나 더 흥분할 만한 어떤 여지도 주지 않은 채 벤의 눈 앞에 풀어져 있었다.

 
 

에로티시즘이란 결국 벌거벗은 몸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를 욕망하고 있다는 심리적 기대감에서 비롯되는데, 어쩌면 스키복과 모자로 꽁꽁 싸매고 나란히 리프트에 앉아 산기슭을 오르는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하지만, 덥고 지친상태에서 바인스캐슬을 찾아 생소한 동네를 헤매고 있을 때는 그런 두꺼운 책 속에 담긴 지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맹렬한 속도로 솟구치는 실망감에 짓눌려 모든 걸 망쳐버린다. 그리고 서로 말꼬리 잡고 늘어지며 비난하는 데만 급급한 난투극을 넘어서서, 잠시 싸움을 멈추고 일련의 상황을 되돌아보며 상처와 두려움의 근원을 찾아나가는 방향으로 토론의 언어를 바꾸지 못하는 우리 자신의 무능함에 좌절하고 만다.

 
 

우리는 외래종 과일 재배방법과 마이크로 반도체 제작법은 알고 있지만, 결혼생활을 꾸려나가는 일에 관한 한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내지 못해 여전히 고군분투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결혼해서 잘사는 법을 굳이 배우지 않아도 터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비행기 착륙법이나 외과 수술법을 직관으로 터득하길 기대해선 안되듯이, 아무런 도움도 없이 더불어 살기라는 과업을 완수하는 비결을 알아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해선 안된다.

 
 

너무 많이 ‘생각’하면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만트라가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부단히 그리고 아주 많이 생각하지 않으면 결국 서로를 파멸시키게 되리란 사실이 자명해졌는데도, 사람들은 이를 피할 생각이 없는 듯 하다.

 
 

지금으로부터 백 년 뒤, 마침내 기분을 바꿔주는 신통한 약을 판매하는 약국이 생겨날지도 모른다. 그 약은 우리의 내면 상태를 건설적인 방향으로 조정해줄 것이고, 우리는 기분을 끌어올린다는 목표하에 그날그날 효능이 다른 약을 골라 먹게 될지도 모른다. 비록 그게 중세의 외과수술 도구들처럼 어설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궁극의 약리학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지금 우리가 말을 통해 지혜에 이르려는 노력은 천지신명님을 읊조리며 비를 내리게 하려는 시도만큼이나 헛된 일로 판명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약리학계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토론과 통찰을 통해 우리 자신을 제어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수밖엔 별다른 도리가 없는 듯 하다. 고집스럽고 불가사의하게 접혀있는 몸 속 대뇌 신피질 고랑들 사이로 더 나은 배우자, 부모, 일꾼, 시민, 연인이 되고싶은 우리의 합리적 희망을 새겨 넣어야한다.

 
 

사업에 실패하면 사람들은 그에대한 관심을 거둬들일 것이고 경력이 망가지는 순간 그에 대해 품었던 존경심도 즉시 철회할 것이다. 그들의 눈에 자신이 얼마나 한심한 인간으로 비치는 지를 알게 되는 것, 벤은 그것이 두려웠다.

 
 

그가 돈을 벌고싶은 이유는 그것에 딸려오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돈으로 타인의 친절을 보장받고 싶었다. 남들이 그에 대해 멋대로 상상하며 흘끔거리는 것이 싫었다. 일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그가 멋있고 능력있는 남자라고 생각해주길 바랐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우리의 권리긴 하지만, 인류 대다수에게, 특히 우리가 사랑받고자하는 사람에게라면 가급적 그런 끔찍한 특권을 행사해선 안된다는 충고가 늘 따라붙는다.

 
 

새로운 경제체제가 요구하는 자질은 자신감과 창조력 그리고 독창성이다. 이것들은 고대 스파르타의 우람한 근육이나 프리드리히 대제 시절 프러시아의 절제와 금욕과 마찬가지로, 우리 시대 사람들이 반드시 갖춰야 할 자질이다.

 
 

아이들은 가족이 영원히 함께 살지 못할 이유는 단 한 가지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 달콤한 삶. 그리고 배후에서 전개되는 어른의 고달픈 삶. 그 둘의 대비를 인식할 때면 벤의 눈가는 축축해졌다.

 
 

15년 전, 그리스로 떠나려던 휴가계획이 취소됐거나, 상대에게 용감하게 전화번호를 물어보지 못했더라면, 그들은 우리의 허리 아래에 저장된 자잘한 조각들과 파편들에 불과한, 실현되지 못한 가능성으로 영원히 남겨졌을지도 모른다.

 
 

아이에게 아빠는 친근하고 평범하고 더없이 다정한 사람이 되어주어야 한다. 단, 너무 흥미진진한 인물이 되어선 안 된다. 그래야 아이가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위계는 그들이 우리보다 삼십오년 먼저 세상에 태어났고, 어쩌다 우리의 존재를 발아시킬 생물학적 수단을 가지고 있었다는 우연에서 비롯되었을 뿐, 그들의 고결함이나 지혜 덕분이 아니다.

 
 

‘특별한 나’는 세월이 흐르면 점점 희미해져갈 필요불가결한 환상이다. 그 결과로 얻게 된 자기 연민의 마지막 흔적조차 사라질 마흔 살 무렵이 되면 헛된 꿈에서 깨어나 우리의 어리석음과 죄 많음을 똑똑히 바라보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벤은 자기가 알고 있는 그 어떤 여성보다도 엘로이즈를 원했다. 다만 그들은 결혼생활이라는 맥락에서 봤을 때 실제적인 섹스행위에 대한 생각이 부적절하다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매일 밤 함께 이브자리에 드는 사람, 진짜 살과 피로 이루어진 소중한 사람보다는 낯선 사람과 인터넷 채팅방에서 하는 섹스가 심리적으로 덜 부담스러웠고, 그래서 더 흥분되었다.

 
 

프로이트는 ‘애정의 영역에서 나타나는 절하현상의 보편적 경향에 관하여’라는 거북하면서도 아름다운 제목의 논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사랑하면 정욕이 사라졌고, 정욕을 느끼면 사랑할 수 없었다.”

 
 

우리가 부부간의 섹스를 회피하는 건 재미없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섹스의 쾌감이 가정생활에 수반되는 다른 많은 일들을 감내하는 우리의 수용능력을 위태롭게 할 만큼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섹스는 잘 아는 사람과 하기엔 지나치게 사적인 행위일지도 모른다.

 
 

인터넷 익명 채팅방을 통해 알게된 베키라는 여성은, 섹스에 해당하는 고대영어 단어 ‘알다(know)’와 완전한 동의어였고, 본질적으로 어울렸다. 즉, 그녀는 ‘알고싶다’는 간절한 열망을 불러 일으키는 여인이었다.

 
 

우리를 둘러싼 현대의 사랑 이야기는 우리에게 위험천만한 기대를 주입했다. 우리는 다른 사람 때문에 실망하지도 않고, 우리 또한 그를 실망시키지 않기를 진정으로 바라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초자연적인 묘기는 경우에 따라서가 아니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들 대다수는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실제로 그런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그리하여 우리가 ‘적절한’ 후보만 찾아낸다면 성인이 되어서도 역시 그럴 수 있으리란 희망을 품게 되었다.

 
 

어린 시절 우리는 세상의 전부인 사람에게 우리도 전부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물론 엄마는 우리를 사랑한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대로는 아니다. 엄마에겐 남편이 있고 친구들도 많고 복잡한 이해관계도 있다. 그녀는 나날이 나아지고 싶고, 책도 읽고싶고, 자기 엄마에게 전화도 하고싶다. 한 두 번은, 우리를 돌보다 너무 지쳐서 이층의 자기 방으로 올라가버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흐느끼면서 젖은 베게에 대고 실토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녀의 인생을 망쳤다고.

 
 

끊임없는 격려와 위로를 받으면서, 결국 우리는 자신이 양육자에게 전부일 순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희망은 결코 죽지 않는다. 그것은 다만 옮겨갈 뿐이고, 우리 시대의 낭만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방식으로 과도하게 조장된다.

 
 

우리 마음 어딘가에는 예민하고 감정기복이 심한 넉 달 된 아기가 근본주의자의 기대감을 품고 여전히 살아있다. 그리하여 이른바 성년에 이르면 우리에게 완전한 기쁨이 될 누군가를, 그 사람과 결혼하고 영원히 행복하게 함께 살려고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 헤맬 준비가 되어 있다.

 
 

지금까지 보아온 대로, 현대의 결혼은 섹스, 사랑, 가족이라는 세 가지 욕구를 조화시킬 수 잇는 무대로 정의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각각 다른 것들에 서로 위협이 된다. 누군가 사랑하는 것은 그와 섹스하는 능력을 위태롭게 한다. 특별히 사랑하진 않지만 매력적으로 느끼는 누군가와 섹스하는 것은 사랑하지만 더 이상 흥분되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를 위태롭게 한다. 아이를 갖는 것은 사랑과 섹스 모두를 위태롭게 한다.
그리고 사랑과 섹스에만 몰두하는 것은 다음 세대의
육체와 정신의 안녕을 위태롭게 한다.

 
 

“맹세합니다. 당신에게, 오직 당신에게만 실망할 것을 맹세합니다. 내 후회의 유일한 대상이 ‘당신’일 것을 맹세합니다. 당신만 아니었더라면 평생 수없이 바람을 피웠을 거라는 후회의 본보기일 것을 맹세합니다. 지금까지 나는 선택할 수 있는 여러 종류의 불행들을 탐구해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한 몸 바쳐 희생하기로 선택한 사람이 바로 당신입니다.” 결혼식에서 신혼부부가 서로에게 하는 서약은 이처럼 관대하고 공손하며 낭만적이지 않은 서약이어야 마땅하다.

 
 

이 시대와 세상은 어떻게 사랑하고 사랑받을지 아는 사람이 된다는 건 타고나는 것이지, 노력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믿었다. 하프시코드나 고대 그리스어를 연습하듯이 사랑도 연습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이 시대와 문화는 현실에 있는 나와 매우 맞지 않는 인간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아내기보단, ‘알맞은’ 사람을 찾아내는 것을 관계맺기의 결정적 관건으로 파악했다. 파일럿, 외과의사, 회계사, 엔지니어에게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은 받아들이면서도 연인이나 부모가 되기 위한 공식 훈련과정을 만드는 것에는 눈에 띄게 소극적이었다.

 
 

어른의 사랑은 아이일 때 어떻게 사랑받았는지를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 무엇을 희생했는지 상상해보는 것이다.

 
 

우리는 행복을 오래 지속되는 어떤 상태로 생각한다. 적어도 수십 년은 계속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행복은 정말로 순간을 낚아채는 것이다. 호화로운 호텔, 공장, 쇼핑센터, 신용카드, 식당 등 문명이
이룩한 모든 성과에도 불구하고 십 분 남짓의 만족을 맛보는 일은 전적으로 우리 손에 달려있다.

 
 

벤은 극적인 운명을 원했다. 그런데 자신이 이미 그런 운명을 가졌음을 이제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을 잘 지켜내는 것, 온전한 정신상태와 생활할 수 있는 경제력을 유지하고, 결혼생활에서 살아남고, 아이들이 잘 되는 것. 이런 계획은 노르웨이 시인의 서사시만큼이나 영웅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지극히 평범한 삶이라는 엄청나게 어려운 과제를 그럭저럭 계속해나가는 단순한 일. 이것이 진짜 용기이며 영웅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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